user::74a961e7-578f-4011-8815-9e58c3b2838d



제1독서 이사야서 45장, 1절~6절, 제2독서 사도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1장 1절~5ㄱ 절, 복음 마태오 복음 22장, 15절~21절.

여기 게시는 분들께서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식이 어릴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사랑스럽습니다.
자식이 철이들면 반항을 하고, 빗나가기도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타이르기도 합니다.
사춘기에는 더욱더 심해져서 부모의 마음이 많이 아프게 됩니다.
오죽하면 딸 자식은 머리를 깎을 정도이며, 매를 들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식을 사랑합니다.
사랑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아픔을 주면서 우리 부모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지난 3주간, 즉 연중 26주일, 27주일, 28주일 동안 우리는 마태오 복음 21장과 22장을 들었습니다.

연중 26주일의 주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마태오 복음 21장 28절부터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삭 사제들과 백성 원로들이 다가와서 예수님께 몰어보게 되어
에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어딴사람이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는데, 맏아들은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는데, 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둘중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아들은 누구인가? 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맏아들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는 세리나 창녀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기 대문에 지도자들보다 먼저 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고
현 상태를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연중 27주일에는 21장, 33~4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늘 나라를 잠시 포도밭의 소작인에 비유를 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상대로 물어보십니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습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하였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내 아들은 괜찮겠지 하면서 아들을 보냈지만, 아들까지도 저자가 포도밭 상속자다 하며 소작인들이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포도밭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면서 지도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포도밭을 소작료를 잘 내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느님은 소작료를 잘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맡기실 것입니다. 하십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비유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었습니다.

연중 28주일에는 마태오복음 22장 1절~ 14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풍성한 잔치에 초대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임금이 베푸는 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잔치에 응하지 않습니다.
임금은 아무나 잔치에 데리고 ㅇ화서 잔치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되어 앉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쫓아 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이스라엘 자손이면서 어뚱한 짓들이나 하고 다니기에, 이방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앉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3주간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과 바라사이, 율법 학다들의 위선과 가식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십니다. 이는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여서 하는 행동과 똑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에 사랑을 표현하신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결론입니다.
위선과 고집이 강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질책을 받고서는 회개하지 않고 앙심을 품고 예수님께 번격을 가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는 이스라엘이 독립국이 아ㄴ;고,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백성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공개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로마에 세금을 내는것이 옳은가?"
이 질문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한 질문입니다.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만일 에수님께서 로마에 세금을 내야한다고 대다하시게 되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게 되고
로마의 황제를 인정하게 되면서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됩니다.
만일 세금을 내지 마라 할 경우에는 로마 관리들에게 반역자, 선동자로 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속셈으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에수님께 올가미를 씌울려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마태오 복음 22장 15절, "그때에 바라사이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의논하였다."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합동작전을 펴게됩니다.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은 평소엔 처다보지도 않았지만, 이때엔 서로 합동을 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 시대엔 정통 보수주의자들이며, 나라가 빼앗겼지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절대 반대하였고, 이는
신권 침해라고 하였으며, 국수주의자들이며 보수주의자들입니다.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정권하에서 갈릴레아의 헤로데 일파들입니다.
이들은 로마 정책에 적극 협조자들이며, 권력의 시녀들입니다. 우리 일제시대의 앞잡이들과 같은 부류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로마정권의 시녀들과 연합 합동작권을 펼치고, 음흉한 계략을 세웁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속셈을 꾸ㅐㅔ뚫어 보시고, 지혜롭게 올가미를 피해가셨습니다.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하십니다. "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카이샤의 것입니다. 카이샤의 것은 카이샤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모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형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며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카이샤이 동전에 카이샤이 왕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상,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속성,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영원한 것을 꿈꾸고 노래합니다.

100년도 못사는 것들이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닮은 것입니다. 중요한 속성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것
"영원을 꿈꾸는 것." 우리는 그것을 희망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몰지각한 정치인들이 국가의 권력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국가의 권력을 보거라. 하느님 권력이 국거의 권력보다 영원한 것이다.
국가의 권력은 인정하지만, 이것은 하느님께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면 안되고,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정해진 것입니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다." 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칠한 무덤은 얼마나 추악합니까?
바른길로 돌아오라고 찍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호소와 경고를 무시하고 손을 맞잡고 예수님을 죽이자 하며 그런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