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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연중 22주일 최창호 야고보 신부님 강론



제1 독서예레미야서20.7-9절, 제2독서 사도바오로의 로마서 12.1-2, 복음 마태오복음 16.21-27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말씀의 주제는 고통과 죽음, 십자가의 의미압니다.

종교란?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잘 깨닫고 극복하는 힘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위하여 고통과 죽음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오늘 1독서의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의 고백과 독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기원전 600년경의 예언자로서 바빌론이 유다를 침입시 마지막 시대에 살으셨던 분입니다.

당시에 정치가들은 이집트와 주변국가들과 연합전선을 펼쳐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는데, 예레미야 예언자께서는 "너희 유다는 망해야 한다."
 "연합전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데 소용없다." 하느님의 뜻은 "너희 바빌론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바빌론이 너희에게 주는 고통 이것이 너희들의 죄값이다."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유다는 고통을 겪으며 잘못을 깨달아라." 하는 말씀을 유다를 통해서 전달하십니다.



유다 입장에서는 예레미야가 반역자이며, 유다의 임금, 고위관리 및 예언자들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반역자로 취급하여 감옥에 가두고 폭행을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께서는 에레미야예언서 1장 10절에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하시며,
하느님이 불렀을 때 하느님의 큰 도구가 될줄 아셨다.

그러나, 막상 하느님의 말씀을 유다에게 전했는데 유다인들니 반역자로 취급하였다.


오늘 제1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자께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주님의 꾀임에 빠져 유다인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있다.
예언자께서는 "이제 다시는 주님의 이름을 밖으로 내지 않겠다." 고 다짐하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길 즉, "심장속에서 타오르는 불길" 은 스스로 안하겠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예언자께서는 마지막엔 하느님께 항복하고야 맙니다.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겠습니다." 라시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예언자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고백과 거의 일치합니다. 즉 "고통의 신비" 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겸손하게 되며 소리치며 하느님을 찾고 기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 연중 21일에서 예수님께선 "나는 너희에게 누구냐?" 하고 물으시고,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축복, 칭찬해주시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시며 베드로에게 절대적 권한을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예고하십니다. 몇일 뒤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되며,
그때에는 사람들로부터 핍박, 고통, 구타 및 고문을 당하시게 되는 것을 알고 계시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때 너희들은 당황하지 마라.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겠다. 하십니다.



즉,"수난 예고" 입니다. 총 3번의 수난 예고를 하셨는데, 그중 첫번째 예고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하면서
예수님을 지켜드리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믈러가라.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하시며, 이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고 하시며 꾸짖으십니다.

즉, "베드로는 주춧돌이 될 수도 있지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누가 자기가 하는 일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과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는 피함으로서가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서 녹이고 구원의 힘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읍니다. 내 십자가는 피할려고 하면 끝까지 내겐 
 짐이되지만, 끌어 안으면 더 이상 내 십자가와 고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께서 벗어날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느님께서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 가셨습니다. 



오늘의 묵상은 "우리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고통, 힘듬, 어려움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처음 결혼하면 사랑의 힘으로 산다고 하지만, 살아가면서는 용서의 힘이 더 필요합니다. 사랑보다는 용서가 더 필요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