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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4주일 최창호 야고보 신부님 강론



제 1독서 집회서 27.30~28.7절, 제2독서 로마서 14.7~9절, 복음 마태오 복음 18.21~35절.



제1독서인 집회서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헬레니즘시대에 제 2정경으로 유대교 문학의 지혜 장르를 보여주는 탁월한 본보기의 성경이다. 이 시대의 지혜 문학서는 잠언, 전도서, 욥기, 지혜서를 꼽을 수 있다. 지혜서는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지침과 권면을 위선, 관용, 효도등을 주제로 수록되어 있다.

소피아(지혜의 여신)로 인격화된 지헤는 자신과 하느님의 영원한 관계에 관해 길게(24장) 설명하고 있으며, 모세의 율법과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다.



제1독서는 우리가 살아가다가 누군가에게 복수심이 생길 때 명심해야할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있다. "주님의 용서를 받ㅇ려거든 너도 형제 자매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는 것을 5차례나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5차례 모두 동일한 내용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너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너는 어찌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느냐? 용서를 청하기전에 먼저 용서하거라.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중국 속담에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자신을 헤친다." 즉, 앙심을 품으면 먼저 자기자신을 헤친다는 말이 있다. 집회서의 저자는 "네 종말을 생각하고 미움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층실하여라." 하고 설명하고 있다.



제2독서 로마서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행실을 가르치고 있다. 초대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정통 신앙인인 유대교인들, 개종한 신자들, 이방인들이 모여서 초대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모두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가리자 않고 먹지만, 어떤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즉,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않았다.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 신자들이면 음식을 가릴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난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붙란이 생기고,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과 모든 날이 동일하다는 사람들 사이에 분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신자들 사이에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사사롭고 개인적인 것으로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멸시하고 심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심판하고 판결하실 수 있습니다.



복음 말씀인 마태오 복음은 복음사가가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우리와 이웃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로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복음에서와 같이왕이 큰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한 이유와 같습니다. 즉 동정심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복음에서  만탈렌트를 빚진 사람은 자기 평생동안 그  돈을 갚을 수 없는만큼의 금액입니다.이 사람은 평생 빚에 짓눌러 살아야 합니다. 갚겠다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왕이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동정심때문 입니다. 동정심은 라틴어로 꼼빠시움이라고 합니다.꼼빠시움은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즉, 배고픔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왕이 그 사람 처지를 자기 처지로 생각해서 빚을 탕감해 준것은 동정심 때문입이다.



하느님께서는 용서의 은혜를 입고 체험하고 용서하는 사람도 살기를 바라십니다. 즉, 수직과 수평적 관계가 직결돠어 있으며 서로 연결돠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관계는 법과 의무의 관계가 아니다는 것이 이 비유입니다.

왕은 계약을 무시하고 빚을 탕감해 줍니다. 즉, 이는 계약 관계를 무시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새벽 6시부터 포도밭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과 오후 5시부터 가서 1시간동안 일하는 사람과 일당을 동일시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인력시장에 간 사람은 모두 나를 팔기 위해서 갔지만, 현실적으로는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모두 비교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능력대로 은혜를 받는게 아닙니다.



복음에서 만탈렌트를 빚진 사람이 빚을 탕감받는 엄청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기는 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둡니다. 우리는 서로 감에 용서는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조건늘 달아서 하는 권한이 아니라 용서는 무조건 해야하는의무입니다.

"너도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지 않느냐, 당연히 해야하지 않느냐?"

하느님 나라는 왕이 종에게 빚을 탕감해 준것처럼,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용서와 특성입니다,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맘대로 하지만, 용서는 또다른 차원에서의 문제기 때문에 힘듭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하느님 용서를 진심으로 체험하고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하고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